《늙어가는 세계, 깨어나는 기술》(2) – 가장 먼저 늙은 나라, 일본

가장 먼저 늙은 나라, 일본
가장 먼저 늙은 나라, 일본

"기술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가? 혹은 돌봄의 파트너가 될 수 있는가?"

일본, 가장 먼저 늙은 나라

2025년 현재,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국가입니다. 전체 인구의 약 30%가 65세 이상으로, 약 3,625만 명에 달합니다. 특히 2025년은 일본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가 모두 75세 이상이 되는 해로, '2025년 문제'라고 불리는 구조적 고령화 사회의 전환점을 의미합니다. 일본은 요양 및 돌봄 인력이 2040년까지 약 1,100만 명 부족할 것으로 예측되며, 고령자 복지의 미래를 기술과 사회 시스템 개혁에 기대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2015년부터 로봇 돌봄 기기를 공공 요양보험에 포함시키는 시범정책을 도입했고, 민간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들은 앞다투어 새로운 돌봄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기계가 인간을 대체한다'는 논란과 함께, '기술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보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일본 총무성 통계국 / WHO 고령화 보고서

 

특히 지방에서는 청년층 유출과 저출산의 영향으로 ‘노인만 남은 마을’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시코쿠 지방의 나고로(Nagoro) 마을은 실제 주민보다 마네킹 인형 수가 더 많으며, 이는 공동체 해체와 정체성 상실이라는 사회적 위기를 상징합니다.


로봇이 일상이 된 요양 현장

일본 후쿠오카현의 한 요양시설에서는 매일 아침 로봇 ‘페퍼’가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오늘 날씨가 맑네요. 스트레칭부터 해볼까요?” 페퍼는 체조를 지도하고 대화를 나누며,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러한 장면은 일본 전역의 요양 현장에서 점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주요 로봇 돌봄 기술 사례

  • 페퍼(Pepper): 소프트뱅크 로보틱스에서 개발한 감정 인식 로봇. 노인과의 대화를 통해 고립감을 완화하고, 체조나 퀴즈를 통해 인지 자극을 유도합니다. 치매 초기 환자의 정서적 자극 도구로도 활용됩니다.
  • 로베어(Robear):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에서 개발한 간병 보조 로봇. 노인을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기는 등의 업무를 수행하며, 요양보호사의 신체적 부담을 줄입니다.
  • 파로(Paro): 물범 인형 형태의 정서 케어 로봇. 촉각과 소리에 반응하며 치매 환자의 정서 안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HAL (Hybrid Assistive Limb): 사이버다인(Cyberdyne)이 개발한 외골격형 착용 로봇. 사용자의 신경 신호를 인식하여 움직임을 보조하고, 재활치료나 낙상 예방, 보행 능력 개선에 활용됩니다.

이러한 기술들은 단순히 인간을 대체하는 것을 넘어, 돌봄의 파트너로서 간병 노동의 부담을 덜고 정서적 공백을 메우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로봇 돌봄의 한계와 과제

기술이 돌봄의 가능성을 확장해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의 로봇 돌봄 시스템에는 다음과 같은 한계도 존재합니다.

  • 고비용: 로봇 개발 및 유지비용이 높아, 중소 규모 시설에는 현실적인 도입 장벽이 존재합니다.
  • 정서적 교감의 부족: 로봇은 감정을 흉내낼 수 있으나, 인간 고유의 공감 능력과 맥락 이해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 기술 격차: 도심과 지방 간의 인프라 차이로 인해 기술 도입 속도와 범위에 큰 격차가 존재합니다.
  • 사용자 수용성: 고령자 모두가 로봇을 환영하는 것은 아니며, 기술에 대한 거부감이나 사용법 학습의 어려움도 문제입니다.

기술은 단독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아닌, 제도와 문화가 함께 작동해야 하는 하나의 구성 요소입니다.


고령자의 사회참여와 일의 복지화

기술은 단지 돌봄의 방식을 바꾸는 것을 넘어, 노인의 삶을 더 오래 자립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보완하는 기술은 고령자의 사회활동과 노동 참여를 가능하게 만듭니다. 기술은 돌봄의 도구이자, ‘쉴 권리’뿐 아니라 ‘계속할 권리’를 지키는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일본의 고령화 대응은 노인을 단지 보호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활동의 주체로 바라보려는 흐름과 연결됩니다. 70세 이상의 고령자 중 상당수가 여전히 일터에 있으며, 기업들은 고령 근로자를 위한 맞춤형 업무 환경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2025년 기준, 일본의 65세 이상 남성 노동참여율은 51.8%로, 미국(31.4%) 등 주요 국가보다 훨씬 높은 수준입니다.

 

일본의 지방 자치단체들은 고령자 전담 일자리 센터를 운영하고, 텃밭 가꾸기, 통학 보조, 커뮤니티 안내 등 지역 기반의 일거리를 통해 사회적 연결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노인의 자존감 회복과 공동체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돌봄의 미래를 다시 묻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고령화에 직면하고, 로봇 기술을 복지 시스템에 본격적으로 도입한 나라입니다. 그들의 실험과 시행착오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들이 곧 겪게 될 미래를 일본은 먼저 살아내고 있는 셈입니다.

 

기술은 인간의 한계를 보완하는 도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돌봄이란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의 연결, 정서적 교감, 공동체 속 온기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정교한 기술이라 해도, ‘기다려주는 마음’은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이 글을 읽는 우리는 지금 부모님의 노후를 걱정하거나, 머지않아 자신의 노년을 상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노후를 꿈꾸고 있나요? 누가 우리를 돌보고, 우리는 누구를 어떻게 돌볼 수 있을까요?

 

기술은 돌봄의 책임을 분산시킬 수 있지만, 그 방향은 철저히 인간 중심이어야 합니다. 일본의 사례는 기술이 돌봄의 미래를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이며,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다음 편에서는 스웨덴의 고령화 대응 사례를 살펴봅니다. 기술과 복지를 ‘권리’로 설계한 북유럽 모델에서 우리는 또 다른 해답의 조각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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